[MT리포트]민식이법 '위헌 or 합헌'…헌재 유사사례 결정 보니

머니투데이

[편집자주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민식이법에 대한 논란이 과잉처벌, 악법 주장에 이어 보수·진보간 진영대결과 이념논쟁으로까지 확산됐다. 법안 내용을 정확히 이해해 어린이 교통안전을 어떻게 강화해야 할지에 대한 후속 논의가 필요한 자리에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입법 과정에 대한 아쉬움이 자리잡았다. 민식이법을 낳기까지 우리가 무엇을 놓쳤기에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것일까.
[[민식이법,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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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인 고 김태호, 김민식, 이해인 양의 부모가 기자회견하고 있다. / 사진=홍봉진 기자 honggga@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민식이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위헌'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 보호구역내 어린이 사망 교통사고시 운전자를 최소 3년이상 또는 무기 징역형으로 처벌하도록 한 형량이 다른 범죄와 비교시 과하다는 게 위헌 논란의 근거다.

과거 헌법재판소 결정례와 법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과실'에 의한 사망 교통사고에 대해 징역 3년형 이상을 규정한 민식이법은 시행이후 '위헌'여부를 두고 헌재 심판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헌재 "범죄 경중, 행위자 책임에 비춰 지나치게 가혹하면 과잉입법"

2006년 헌재 전원재판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제5조 4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직무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사람이 금융기관 임직원일 경우, 액수에 따라 가중해 처벌하는 조항이었다.

당시 해당 조항은 "금융기관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수수한 금액이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일 경우 5년 이상의 징역형에, 5000만원 이상일 때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형벌이 죄질과 책임에 상응하도록 적절한 비례성을 지켜야 하는 것은 특별형법도 마찬가지"라며 "해당 규정은 범죄의 실태와 죄질의 경중, 행위자의 책임 등에 비춰 지나치게 가혹해 과잉입법 금지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또 "금융기관 임직원 수재죄를 수수 금액에 따라 가중 처벌하는 입법 사례는 한국밖에 없으며 법관의 양형 선택과 판단권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어 형벌의 비례성 원칙에도 반한다"고 덧붙였다.

헌재가 금품 수수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특경법 가중처벌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릴 때 '그러한 입법 사례는 한국밖에 없다'고 판단 근거로 제시한 부분은 '민식이법'에도 적용될 수 있다.

판사 출신 한 중견 변호사는 "교통사고 범죄에 대해 '징역형'을 두고 있는 나라는 매우 드물어 한국밖에 없다고 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재범의 우려가 있는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범죄자의 경우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통해 교화를 하는 게 전세계적인 법집행 정신이지만, 과실로 인한 우발범죄의 교화를 사회와의 격리를 통하는경우엔 효과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를 통해 피해자의 피해가 회복되지도 않아 대륙법 체계에서는 과실범에 대한 처벌은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이 더 대세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민식이법은 고의가 아닌 과실에 의한 사망 교통사고에 대해 징역형만을 두고 있어 과잉입법 금지, 형벌의 비례성 원칙에 반한다는 판단을 받을 수도 있다.

◇헌재 "형벌체계상 정당성과 균형을 잃은 것이 명백한 경우 위헌"

2015년엔 상습절도범에 대해 단순절도도 3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도록 한 이른바 '장발장법'도 헌재의 위헌 판단을 받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헌재는 상습절도범과 상습장물취득범을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 4 관련 조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특가법 제5조의4 제1항은 "상습적으로 절도죄를 범한 사람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또 제4항은 "상습적으로 장물취득죄를 범한 사람은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헌재는 장발장법에 대한 결정문에서 "어떤 유형의 범죄에 대해 특별히 형을 가중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가중의 정도가 통상의 형사처벌과 비교해 현저히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은 것이 명백한 경우 위헌이 된다"고 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위배될 뿐 아니라 법의 내용에 있어서도 평등원칙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헌재가 장발장법 위헌결정에서 언급한 "통상의 형사처벌과 비교해 현저히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은 것이 명백한 경우 위헌"이라는 판단근거도 민식이법에 적용 가능하다. 이미 상당수의 법전문가들이 민식이법의 가중처벌 조항은 형법체계에 맞지 않는단 지적을 하고 있다.

한 로스쿨 형법교수는 "민식이법도 과잉금지와 비례원칙에 위반된다면 위헌판단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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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법사위 민식이법 검토보고서 중 일부, 강훈식, 이명수 의원안은 법정형은 '교통사고 후 도주죄' 및 '위험운전치사상죄'의 법정형과 유사하게 규정돼 있다 /자료=국회 법사위


◇국회의원들 테이블에 '민식이법' 놓여진 시간 채 '5분'도 안 돼 통과
민식이법은 국회 입법과정에서 의원들이 숙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9월 충남 아산에서 민식이 사망사고가 발생한 뒤 10월 중순 아산에 지역구가 있는 강훈식(더불어민주당), 이명수(자유한국당) 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다. 두 의원의 개정안은 담당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11월29일 전체회의 테이블에 첫 상정되자마자 이미 마련된 법사위 수정대안으로 고쳐져 법안소위를 거치지 않고 단숨에 통과했다.

언론에 민식이 관련 사연이 여러 번 소개돼 이슈가 됐고 2건의 의원 발의안에 대한 법사위 전문위원과 입법조사관들에 의한 사전 검토가 있었지만 정작 법사위원들은 민식이법의 구체적 내용을 11월29일 전체회의에서 처음 봤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법사위 대체토론은 약 1분만에 끝났기 때문에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는 동안 의원들의 테이블 위에 종이로 인쇄돼 놓여 있던 민식이법이 의원들에게 읽힌 시간은 다 합쳐도 5분이 채 안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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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서 12월10일 본회의를 통과해 약 3개월 뒤 시행예정인 '민식이법'.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규정속도 이내라도 '운전자 과실'이 인정돼 예외없이 징역형에 처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게 법전문가들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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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1일 발의된 강훈식 의원안과 10월15일 발의된 이명수 의원안. 11월29일 국회 법사위 수정대안에선 강훈식 의원안에서 '12대 중과실(교통사고 특례법 제3조의제2항)'에 대한 가중처벌 조항이 빠졌다. 본회의를 통과한 '민식이법' 수정대안은 '12대 중과실'과 무관하고 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어린이 인명사고에 대해 '중과실'이 없이 '단순 과실'만 있어도 적용된다.

민식이법 통과가 역풍을 맞게 된 주된 원인인 높은 '형량'에 대해 법사위에서나 본회의에서 의원들에 의한 '직접' 검토나 토론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 법사위 검토보고서엔 두 의원이 각각 발의한 민식이법의 '법정형'에 대해 특가법에 규정된 '교통사고 후 도주죄' 및 '위험운전치사상죄'의 법정형과 유사하게 규정한 것으로 분석하면서, 유사범죄의 각 법정형과 균형을 이루는지 죄질과 비난가능성 등을 고려해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적혀 있다.
◇'뜨거운 감자' 민식이법…'형량'의견 안 내고 국회에 책임 떠 넘긴 법원·법무부

입법권한이 있는 의원들이 '민식이법'을 통과시키면서 가장 중요한 '법정형'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조정했어야 하지만 감정적 여론과 시민단체의 압박에 밀려 두 의원이 제시한 형량이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통과된 셈이다. 처벌형량이 의원발의안 원안 그대로 정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이번 민식이법 입법과정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입법전문가인 한 변호사는 "의원 발의안에서 제시된 처벌형량은 출발점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고 법안소위 과정 등에서 법원행정처장·법무부차관 등이 참여해 전문적 관점에서 의견을 내고 여러 요소를 반영해 조정되기 마련인데 민식이법은 법안소위 등 그런 과정이 다 생략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민식이법 소관부처인 법무부와 민식이법 적용 대상 사건에서 양형판단을 해야하는 법원은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민식이법 '형량'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와 법원은 국회가 '입법재량'에 따라 민식이법을 입법할 수 있다는 취지로만 의견을 냈다. 다른 법안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형량에 대한 의견도 제시하는 법무부·법원도 여론을 민감하게 여기고 사실상 국회에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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