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투자시계’ 지금은 몇 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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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 나태주의 ‘풀꽃’이다. 이름 모를 야생화도 찬찬히 보면 예쁘다. 그리고 오래 볼수록 사랑스럽다. 세상 이치가 다 그렇다. 그래서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나 물건에 애정이 더 가는 것은 당연한 이유다. 사람들의 선호는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루카스가 주장한 ‘합리적 기대가설’이 흔들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음에도 합리적일 거라 믿는다. 상식과 합리가 제대로 통했다면 대부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판과 비이성, 그리고 불합리에 감정까지 더해진 결과다. 주식시장의 비이성적 패닉과 탐욕적인 열광, 역시 마찬가지다.
 
주식시장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탐욕과 공포지수’(Greed & Fear Index)라 해서 투자심리를 측정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투자시계’(Investment Clock)를 그려 시장의 심리를 알고자 했다. 자, 이제 시계 숫자판을 상상하며 이야기해보자. 12시는 상승국면이 폭발하면서 투자자들의 흥분과 탐욕이 극치를 이루는 국면이다(탐욕국면). 절정을 이룬 시장은 일시적 하락이라 믿지만 사실상 추세적인 하락국면으로 진입한다. 3시를 지나면서 펀더멘털이 붕괴되면서 급락국면을 맞게 된다. 마침내 6시가 되면 시장의 거의 모든 투자자는 공포에 휩싸여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후회하는 국면이 된다(공포국면). 그러나 시장은 점차 공포와 후회를 극복하고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다. 펀더멘털이 회복되면서 시장은 9시를 통과하며 본격 상승국면에 진입한다. 이후 시장은 충분히 공급된 유동성과 펀더멘털을 확인한 투자자들에 의해 절정으로 치닫고 결국 다시 흥분과 열광으로 탐욕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흔히 공포국면으로 불리는 6시가 되면 낮은 밸류에이션과 적은 거래량으로 시장은 극도로 위축된다. 매도권유가 당연시되고 시장의 악재는 이미 알려졌으나 계속되리라는 믿음이 팽배해진다. 그리고 ‘디레이팅’(De-rating) 논쟁이 벌어진다. 즉 주가가 한 단계 더 하락할 수 있다는 생각이 시장에 만연하기 시작한다. 마치 올해 3월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며 사회와 기업, 가정을 공포로 몰아넣은 그때, 영원히 밝은 미래는 올 것 같지 않던 그 시기가 바로 6시인 것이다.
 
이제 주가가 빠르게 회복하면서 코스피(KOSPI)가 저점 대비 1000포인트 이상 상승했고 2600을 돌파하면서 미국 증시와 나란히 사상 최고치까지 갱신하는 등 누구도 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혹시 지금이 ‘투자시계’의 12시에 근접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럴 때일수록 찬찬히 보아야 한다. 정말 호재가 널려 있고, 계속되리라는 믿음이 있는지, 높은 밸류에이션과 그것을 정당화하려는 억지 노력들이 있는지를. 무엇보다 기업 실적들이 상향되지도 않는데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며 흥분하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아직 본격적인 리레이팅(Re-rating)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기업들의 실적모멘텀도 살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랫동안 보아야 사랑스러워진다. 흥분하지 말고 찬찬히 살펴보자.
이윤학 BNK자산운용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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